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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노개식의원과 갑산장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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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6:38 조회1,6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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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러므로 淸虛堂과 제산선생님과의 仔細內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선생님과 노약국과는 매우 切親한 사이라고 알려졌음에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면 선생님의 공부한 過程을 전혀 알리고 싶지 않았다는 증거라 할 것이다.

 

노약국도 雲峰朴四柱는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선생님과 같이 人事도 다녀왔다고 했다.

그렇지만 朴四柱 밑에서 선생님이 四柱工夫를 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前後事情考慮해볼 때 숨겨진 秘密이 있는 것이니 선생님께서 누구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나에게는 저런 말씀을 하셨으리라 고는 생각되지 않기에 미스테리가 있다는 점만 짐작할 뿐이다.

 

여기서 선생님의 증언을 뒷받침 해준 분은 제산선생님의 친동생 되시는 분과 함께 수행하셨던 仁山先生이다. 훗날 인산으로 개명하였고 초기엔 甲山으로 불렀다. 甲山선생은 1928戊辰生이니 청허조사와 32세 차이가 나며 제산선생님보다는 7년 연배이다. 그러니 한참 후배인 노약국이 모두를 알 수 없었을 수 있다고 미루어 짐작이 간다.

 

선생님께서 得道하기 전에 咸陽 靈通寺에서 있었던 일인데, 선생님이 누구를 기다리시면서 同生더러 하시는 말씀이 조금 있으면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신 道人 한분이 오는데” “그분이 방에 들어오시거든 고무신 바닥을 보거라”, 했다는 것이었다.

 

그날 마침 비가 와서 땅이 질펀했으므로 必是 신발창에 흙이 묻어야 하지만 선생님의 속셈은 淸虛祖師께서 道通을 하셨다면 신발창에 흙이 묻지 않았을 것이고 흙이 묻었다면 아직 道通을 못하셨다고 生覺하고 確認檢證을 거쳤던 것이다.

 

동생은 형이 시키는 대로 道人의 신발창을 보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으며 진흙길을 걸어오셨는데도 흙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 혼자 들은 것이 아니고 후학과 같이 들었으므로 신빙성에 무게를 더한다 하겠다.

 

그러므로 淸虛堂을 스승으로 모시고 修道했는데도 남들에게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내가 알기로도 제산선생님을 잘 안다고 하는 분들한테도 선생님의 스승이 있었다는 말씀은 전혀 밝히지 않으셨는데 단 한분이 있었으니 禹樂山선생이다. 樂山과 나에게만 眞實을 말씀해주셨으니 선생님의 깊은 심중을 짐작키 어렵지만 事實임에 의심 없기 바란다.

나 역시 이러한 일련의 진실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기에 선생님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만나서 증언을 듣게 되므로 확인되었던 사실이다.

 

누차 말했지만 나는 본래 의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무슨 일이던 의문점이 제기되면 確認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性格이다. 그러한 성격 때문에 때로는 피곤하고 손해 보는 일도 생기지만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진실처럼 거짓된 이야기를 날조하는 부도덕한 선비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2001년 선생님이 영면에 드시고 난 후에 서울에 있는 문옥당에서 주장했던 제산선생님의 빙의운운하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폭우가 쏟아지는 일기에도 불구하고 함양으로 달려가서 진실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던 일이 있다. 선생님의 일화에 대해 대부분 확인절차를 거쳤으며 확인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사전양해를 구하였다.

 

(:문옥당 노장한이란 사람은 1954년생으로 함양인이다. 1990년도부터 1991년 추석때까지 잠시 제산선생님을 뫼시고 서기를 보다가 기록카드에 誤記가 많아 선생님한테 쫓겨난 사람으로 뒷말을 많이 하며 선생님을 비난하던 사람이다. 사주 鑑命카드를 기록함에 있어 날자를 잘못 記載하게 되면 엉뚱한 사람의 命造를 봐주게 되므로 대단히 神經쓰지 않으면 선생님께 엄청난 를 끼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니 서기로서 자질이 부족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다.)

나는 실학을 좋아한다. 어떤 뜬소문이나 추종하는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영통하신 분들을 자주 만나면서 그 실체를 파악하며 나름대로 학문적 이론으로 정립을 시켜나갔던 것이다. 지금도 사후세계를 말하는 이는 많지만 이론으로 설명이 거의 불가한 실정이지만 나는 말로서 글로서 죽음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영혼의 세계를 논리정연하게 이론화 했던 것이니 영통이나 신명 따위에 연연하지 않으며 불합리한 귀신들린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심령학자들도 나름대로의 이론은 있지만 설득력 있는 논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니 사후세계를 말로 한들 아는 자 없는 소리만 떠벌리게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得道하고 下山하실 때 白雲山 通神庵 아래 사찰하나가 있는데 그곳에 常住하시던 스님이 계셨는데 제산선생님이 得道하려 입산한 것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선생님과도 交分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제산정사에 入門하여 修學할 때 그 스님이 한번 다녀가신 일이 있다. 法名은 잊었고 甲寅生인 것으로 알고 있는 분인데 그때 大田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下山하다가 스님을 만났는데 스님이 묻기를 자네 뭘 좀 통했다면서하더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대답하기를 앞산에 있는 저 소나무가 언제 베일 것인지 정도는 압니다.“ 라고 하니 스님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니 나무의 生死도 안다는 말인가?“ 하니

선생님이 말을 이어 저 나무는 내년 3某日某洞에 사는 가라는 사람이 베어갈 겁니다“.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는 듯이 어안이 벙벙하다가 그렇다면 자네의 神通力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내가 지켜보겠네”, 라고 하며 날자를 적어놓고 다음해 지정한 날에 확인해 봤다는 것이다.

 

실로 그날이 되어 아침부터 지켜보려니까 한나절쯤 되어 어떤 젊은 사람이 톱으로 그 소나무를 자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스님이 신기해서 달려가 그 젊은이를 보고 너 아무데 사는 朴哥가 아니냐?”하고 소리를 지르니 젊은이가 더욱 놀래서 줄행랑을 치더라는 이야기를 선생님께 들었다.

 

小說 같은 이야기지만 내가 보지는 않은 事實이나 거짓은 아니라고 믿는다. 왜냐면 목격자 스님을 만나 뵈면서 그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下山해서는 사람의 얼굴만 보면 그 運命이나 家庭事勿論 무엇이던 훤히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窮塞하던 차에 돈도 좀 벌어야 겠고 하여 부산으로 行術을 나섰다고 하였는데 혼자서는 겁이 나서 몸집이 큰 깡패스님을 帶同하고 仁山선생과 셋이서 어느 곳엔가 자리 잡았는데 (내가 부산에 처음 내려왔을 때이므로 地理에 어두웠는지라 동네이름이 기억에 없다.)

 

하두 아는 소리를 하니까 손님들이 밀려들었는데 주위에서 哲學을 하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는 易術人協會登錄이 안 되었다며 行術妨害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때 선생님 따라 온 스님이 힘이 센지라 행패부리는 術客을 내동댕이쳤는데 양철로 만든 변소간 에 나뒹굴어서 문짝이 부서지고 그 행패 부리던 술객은 피를 흘리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겁이 나는지라 보따리 싸들고 줄행랑을 쳤다고 인산과 선생님 두 분이 배를 움켜쥐고 그때를 回顧하셨다.

 

여기서 잠시 仁山先生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仁山선생은 河東人이며 戊辰生으로 1961辛丑年44였는데 지라산 쌍계사 近處에서 藥草栽培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선생님이 벽소령과 쌍계별장 근처에서 修道하실 때 알게 되어 仁山선생도 四柱學 배우게 되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得道하기 4年前의 일이다.

이때부터 仁山莊과 선생님의 交分이 두터웠고 인산선생이 1985년 봄 연탄가스로 타계하실 때까지 선생님을 하늘같이 보필하던 道伴이면서 後學이었다.

 

그러한 인연으로 선생님이 得道하시자 함께 부산으로 왔던 것이다. 나는 仁山선생께 이런 事情이야기를 들었고 선생님께도 들었던 것이다. 깡패스님이야기도 인산장과 선생님이 함께 談笑를 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라 알게 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 19702차 득도하시고는 곧바로 대신동에 아파트를 마련하여 2弟 中山先生과 함께 상담을 하셨으니 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1차 득도하신 후 이병철회장을 만나뵙고나서 결혼 후 2차입산하기 전에 벌어졌던 소동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인산선생의 명조를 보자.

 

戊丁丙戊

申丑辰辰 仁山先生

 

火土 雜氣 傷官格으로 格局得病이니 生秦死楚運이다. 辰中乙木藥草였는지라 八字에 맞았는데 명리역시 九流術客이므로 제격이었으나 言語話術에 병이 깊으니 입이 열리지 않는 고로 철학관 개업은 했지만 문이 굳게 닫히는 고로 平生을 선생님 書記一生을 마치고 말았다.

 

총명한 분이었다면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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