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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산선생님의 결혼과 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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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6:38 조회1,4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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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로써 海印寺颱風을 가라앉히게 되었으니 道性스님께서는 性哲스님보다 제산선생님을 스승같이 처럼 부처님처럼 지금까지도 존경해 마지않으시는 분이다. 나이로는 道成스님이 十年 年上이다. 내가 부산에 처음 와서 한 달쯤 되어 만나 뵙게 되었는데 道性스님이 나를 보시고는 반기시며 霽山이나 禮山이나 情感이 간다고 하셨다.

 

그러한 因緣으로 내가 서울에 있을 때 寫經해 두었던 佛經을 약 30여점 태종사에 보내서 佛事에 쓰시라고 膳物했던 일도 있는데 지금도 스님이 寄居하시는 에 가면 내가 써드린 觀音菩薩經般若心經이 걸려있다.

供養菩薩의 말로는 觀音菩薩經文을 스님이 그렇게도 좋아하시며 愛之重之 하신다고 한다.

 

年前에는 道性스님이 해남 대흥사 주지로 발령받고 부임하실 때도 초대해 주셔서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는 제산선생님이 患中이었는지라 선생님을 대신해서 나를 招待해 주셨던 것으로 生覺해볼 때 제산선생님께 향한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도성스님께서는 해인사에 계속 계셨으면 해인사총림의 住持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 厚德한 분이었지만 제산선생님의 神通力感化되어 사건이 난지 10년이 지나서 乙卯年(1975)태종대로 와서 태종사를 創建하셨던 것이다.

지금도 조계종에서는 도성스님의 德望認定하고 있다.

 

태종사 창건 때도 逸話가 있었다. 道性스님은 태종사의 位置를 성철스님이 八年長坐不臥하실 때 머무셨던 聖殿庵方位와 같이 乾坐巽向으로 자리 잡았는데 제산선생님이 보시고는 正午方이 아니면 三年後에 절이 헐리게 될 것이라고 하여 正午方으로 앉혔다는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釜山市에서 觀光公園부지인 太宗臺無許可 사찰을 지었다고 하여 撤去대상이 되었으며 三年째 되는 戊午年大統領 令全國 無許可 寺刹撤去令으로 모두 철거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1978년 전국에 있는 무허가 사찰은 거의 철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사 만큼은 救濟가 되어 지금까지 維持하고 있다는 증언을 해주셨다. 스님의 말씀으로는 제산선생이 戊午年에 전국 무허가 사찰철거명령이 대통령령으로 내려질 것을 예견하셨던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三年後에 사찰이 철거될 것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며 正午方이 아니었으면 위기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금까지도 믿고 계시다.

제산선생님 作故하신 이후로는 서로 連絡이 뜸한 실정이다.

 

庚丙丙乙 도성스님의 명조다.

寅申戌丑

 

道成스님의 명조를 보면 제산선생께서 巽方하면 철거될 것이라고 하신 意中을 이해할 것이다. 이는 스님의 命造에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태종사를 가보면 명확하게 그 이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니 現地踏山을 해보지 않고서는 검증이 어렵다 할 것이나 우선 스님의 명조만으로 분석해본다면, 乾坐巽向 戌에 좌하여 을 바라보는 형상이라 방석이 흔들리고 하게 되지만 坎坐离向으로 子午正方을 해야 破煞을 피하고 申金寺門官合이 되어 名分主張할 수 있는 반면 口舌數가 되는 戌丑破煞子水名分으로 抑制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듯 신출귀몰한 통변이라 할 것이다.

 

설령 안다 할지라도 確信있게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느냐 하는데 깨달음의 境地가 있다는 것이다. 事後에는 別論이 많을 수 있겠지만 事前에 예측한다는 것은 깨달은이가 아니면 어렵다는 것이다.

 

해인사에서 越冬하시고 下山하여 丙午年 봄에 지금의 師母結婚하셨다. 사모님의 증언으로는 結婚해서 하루 밤 다녀가면 애가 들어섰다고 하셨으니 新婚初에도 繼續해서 萬行이나 命書探究하느라 禪房出入을 하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丁未年 2월에 長男을 낳으셨으니 그때까지는 萬行으로 歲月을 보내시다가 어느 程度生活與件安定되자 비로소 霽山學基礎準備專念하셨던 것으로 推定된다.

 

그러니까 乙巳年得道하시고 丙午年에 결혼하셨으며 丁未年에 아들 낳고 戊申, 己酉 2年間 物象論을 비롯하여 自然理氣學理論體系를 세우고 理論定立을 하면서 이때 三星會長이병철씨를 만나 6개월간 諮問役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때 이병철회장이 國際市場에 공부방 하라고 6백만원을 들여 집 한 채를 사준 것이 지금은 時價 30억원짜리 금싸라기 땅이 되어있다.

 

이병철회장의 당시 運轉士였던 장병우사장의 증언으로는 선생님이 백운산에서 공부하실 때 이병철회장님의 꿈에 제산선생님이 나타나서 지혜를 구하는 현몽을 얻고는 무작정 백운산으로 찾아가서 제산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부산 해운대에 있는 이병철회장의 별장으로 모셔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결혼식을 마치고 곧바로 백운산으로 들어가셨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때가 丙午年(1966) 초봄으로 추정된다.

 

또한 인산선생의 증언으로는 백운산에서 선생님이 기도를 하는데 소문을 듣고 운전기사(장병우씨)가 먼저 찾아왔다가는 선생님의 거처를 확인하고 이병철회장을 데리고 왔는데 이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이 나라의 財閥이로다 하는 말로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서울 연희동 선생님에서 내가 들은 바로는 선생님께서 白雲山 기도할 때 이병철회장이 찾아왔다고만 하셨다. 어떤 理由로 찾아왔다는 구체적인 말씀은 없었으므로 더 이상 묻지 못했고 단지 산에 계실 때 이회장이 찾아왔던 것만은 틀림없는 事實로 믿어진다. 당시 이병철회장의 운전기사가 장병우씨 였다.

 

이분에게 증언을 들어보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므로 確認節次를 밟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유추해보면 선생님은 得道하시고도 백운산에 더 머무셨다는 計算이 나온다. 아니면 修道中에 찾아왔다고 봐야 할 것인가는 아직 가늠이 어려우나 일단 결혼후 재입산하셨을 때 이회장이 찾아왔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면 1966년도 초라면 삼성그룹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 할 때였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이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입장이다 보니 세 자식중에 누구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었던 것이다.

 

만약 修道中이었다면 이회장이 직접 찾아왔을 것이고 得道後였다면 운전기사가 찾아와서 선생님을 모셔갔을 것이라는 心證이다. 왜냐면 아무리 한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먼지가 펄펄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이회장이 직접 왔다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이회장이 수도처까지 직접 찾아왔다고 하시므로 선생님의 말씀에 무게를 두고 싶다.

 

사카린 밀수사건은 근대역사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영웅시대에서 보여주듯 그 당시 이회장님이 매우 힘들었던 시기였으므로 全國八字를 잘 보는 사람이 있는지 물색했으리라는 心證充分하다.

 

다시 조명해본다면 得道하신 후가 되었던 修道中이었던 시기적으로 볼 때 乙巳年쯤으로 짐작되기도 한일이니 영웅시대에서 보는 바와 같이 乙巳年9월에 中央日報創刊이 되던 때이고 이어 사카린 밀수사건에 휘말려 忠州肥料工場國家獻納하던 무렵이므로 이때가 시기적으로 맞았을 것이라는 豫測도 가능하다.

 

그 후로 이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丙午年6개월간 이회장의 諮問役을 맡으셨던 것으로 본다면 거의 틀림없는 事實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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