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도성스님의 삼고초려 > 지혜의샘

본문 바로가기
즐겨찾기

회원메뉴


농장소식

대야농장 상담문의

080-7000-9988
010-3585-0188
054-437-1032

평일 AM 09:00~PM 20:00

토요일 AM 09:00~PM 18:00

대야농장

지혜의샘 | 100% 국내재배 신선한 야생블루베리 목록

15. 도성스님의 삼고초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6:37 조회1,300회 댓글0건

본문

21. 下山하여 淸虛堂을 찾아뵙고 霽山雅號를 받으실 때 淸虛祖師께서 어렵게 깨달은 를 어떻게 지키고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助言을 해주셨다. 只今當場世上事가 훤히 보이지만 三年만 지나면 눈이 캄캄해질 것이니 가 밝을 때 많은 책을 읽어두어야 永遠히 남을 것이라고 하였다. 가 열려있는 狀態에서 을 보면 永遠히 잊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記憶이 잘되므로 많은 책을 볼 수 있고 理解가 어려운 問題라 할지라도 文理가 열리므로 남다른 解釋을 할 수 있으므로 自然理致通達할 수 있다는 것이다. 事實로 그렇다 같은 을 읽어도 理解하고 解釋하는 範圍가 다르기 때문이며 著者도 미처 生覺지 못하는 文理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長男으로서 甲辰生 老母가 계시므로 結婚도 해야겠고 어느 정도 衣食解決할 만큼 돈도 벌어야 했던 時急事情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부산으로 進出을 했으나 때가 아니었는지라 보따리싸들고 줄행랑을 치게 되자 그 후로는 南原印月一帶를 떠돌며 行術로 깨달음의 境地試驗하셨던 것으로 推定된다.

 

왜냐면 南原印月에서 行術하셨다는 情況이 여러 곳에서 感知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나 仁山선생의 입으로는 전혀 내색이 없었지만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그런 行蹟數次에 걸쳐 느꼈기 때문이다.

 

光州全州는 물론 임실 에서도 선생님을 아시는 분들이 많았고 海東公子라는 別稱南原一帶에서 나온 말이므로 더욱 心證이 가는 일이다. 특히 남원경찰서장과의 逸話도 있고, 南原에 가면 有名한 추어탕집이 있는데 南原郡守 警察署長 등과 함께 자주 드나드셨다는 것을 추어탕집 主人할머니로부터 들었으며 河東 雙磎寺 앞에 있는 쌍계별장의 주인 할머니(辛酉生)와도 得道하신다음에 因緣이 깊어졌던 여러 情況이 그러하다고 판단된다.

 

쌍계별장에도 선생님과 내가 이틀간 머물면서 主人할머니의 四柱를 봐주게 되었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할머니는 젊어서는 해운대에 사셨는데 쌍계별장으로 가시게 된 事緣이 깊지만 여기서 밝히기는 困難한 이야기다. 위에서 밝힌 모든 이야기는 내가 直接 確認했던 이야기다. 선생님은 가끔씩 修道할 때의 追憶을 찾아 다니셨고 옛 追憶을 많이 그리워 하셨으므로 精舍를 떠나 머리를 쉬실 때면 꼭 나를 데리고 답사도 할 겸 자신의 공부하던 현장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印月 南原 全州 등에 있는 風水地官 知人들을 만나 소개도 시켜주시곤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선생님의 足跡을 잘 알고 있는 實情이다.

 

서부경남과 남원 전주지방에 풍수에 관심이 많은 地官들이 꽤나 많고 明堂 찾아 三代를 헤메이던 분도 있었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풍수지리에 관해서는 꼭 소개시킬 때 우리 禮山선생이 많은 깨달음을 얻은 분이니 물으라고까지 말씀하시므로 踏山討論도 여러 번 이뤄졌었다.

나중에 풍수에 관해 신출귀몰했던 많은 逸話를 하나씩 소개할 예정이다.

 

한번은 栢巖 鄭國龍先生과도 同行을 했지만 주로 내가 運轉을 했기 때문에 나와 자주 들리며 海東公子時節追憶回想하시곤 했던 것이다. 한동안 彷徨期繼續되었던 것은 事實이다. 선생님의 발자취를 남긴 곳은 餘地없이 仁山莊隨行을 했다. 선생님은 자기 자랑을 비교적 잘 하셨던 분이다. 나도 例外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自信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는지라 뜻이 하는 사람과는 숨김없이 별의별 이야기를 다하게 되어 있다.

 

公開하기 어려운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人格侵害該當될 수 있는 要素들이 있으므로 많이 濾過한다는 점에 充分理解가 있기를 바란다.

 

乙巳年1得道하시고 나서 淸虛祖師를 찾아뵈었는데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로 얻어진 재주는 世俗에서 3년만 지나면 神明이 어두워질 것이니 지금 많은 책을 읽어두어야 평생 잊지 않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가정 환경상 따르지 못하셨고, 結婚資金을 마련하시느라 겨울한철 바람을 일으키며 行術을 하시면서도 틈틈이 禪房에 들어가 命理書를 두루 涉獵하시면서 淸虛祖師께서 물려주신 自然理氣門中秘傳硏究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님께서는 行術했다는 말씀은 一切 緘口하셨으나 足跡에서 느껴지는 바로는 나의 心證이 틀림은 없을 것이라고 分析된다.

 

乙巳年 겨울 한때 伽倻山 海印寺 선방에 들어가서 門中秘傳命書硏究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總務院長으로 효봉스님의 조카 되시는 道成스님이 있었고, 性哲스님은 백련암에 계셨던 時機로 알고 있다. 선방에는 주로 스님들이 冬安居중 있었는지라 參禪僧들은 命理學이나 道學따위는 異端視 하였으므로 排他的이었다.

 

그렇지만 道成스님과는 交分이 있었으므로 몸을 依支할 수 있었는데 참선스님들이 反撥도 하고 蔑視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쫓겨나게 되어 해인사 입구(현재 宿泊施設이 들어선 자리)에 허름한 오두막집에 단칸방을 얻어서 工夫中이었는데 慧眼이 열렸던 時機였는지라 눈에는 瑞光이 빛났고 眼光이 번뜩였으며 사람을 直視하면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고 하던 시절이다.

 

冬安居가 거의 끝나갈 무렵 海印寺補修工事를 하느라 各處에서 木手를 비롯하여 일꾼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工事場 주변에서 20代女子 强姦殺人事件發生했다는 것이다. 절 앞에서 女人이 강간을 당하고 죽었으니 陜川警察署에서는 獨身者들의 所行일 것이라는 心證만으로 선방스님들을 차례로 소환했던 것이다.

 

그러니 海印寺는 벌집 쑤신 듯 망신스럽기도 하고 體面이 말이 아니었다. 총무원장인 道成스님은 답답하기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冬安居를 끝내고 떠나버린 스님들도 있고 남아있는 스님도 있으니 海印寺를 거친 스님들을 搜所聞해서 警察署로 데려가야 하고 搜査官들이 잡아가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修行하는 參禪道場에 이보다 恥辱스러운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 充分히 이해가 될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得道한 후 무슨 책이든 한번만 들여다보면 明鏡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야농장 | 대표 : 차윤득 | 사업자번호 : 607-06-67726 | Tel : 054-437-1032 | | 팩스 : 054-437-1034
주소 : 경북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559(신주소:대야길 44-109) | 이메일 : daeyablueberry@hanmail.net
통신판매번호 : 제2008-경북김천-0007호
Copyright © 대야농장.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