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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명조의 다른 운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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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03 16:30 조회1,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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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명조의 다른운명

 

한번은 鄭國龍氏親戚되는 젊은 사람이 四柱를 보러 왔는데 馬山에 산다고 했다.

이름은 金鍾國이었는데, 炫國이와 四柱八字가 똑 같았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兄弟9男妹로 같고 형님이

農場經營한 것도 같고 형님의 봉고차를 운전했던 것도 같았고,

군대에서 운전병을 한 것도 같았으며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大學진학을 못한 것도 같았다.

 

현국이는 결국 미국으로 이민하여 케미컬전공한 후 동국대 한의과에 재입학하며 지금 LA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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姓氏가 다르고 胎地居住地만 다를 뿐이었다.

내가 霽山精舍에 있을 때 우리 부모님은 美國으로 移民을 떠나셨다.

나는 空港에 나가지 못했고 炫國이만 다녀왔는데 그날이 129일이었다.

그런데 그해 19일에 김종국의 父親이 목욕탕에서 심장마비로 死亡하자

21일에 葬禮를 치루고 金鍾國弔問客을 봉고차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와 정면충돌하여 死亡하게 되었던 것이다.

炫國은 여름에 가지고 있던 봉고차를 내가 賣却하라고 하여 팔았던 것이

厄運을 막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鍾國四柱를 보면서 今年交通事故를 당하여 죽을 것이라고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炫國이와 같은 命造가 되어 비교 하는 데에만 神經을 썼던 것이었다.

이런 一連의 일들이 自然理氣環境影響家門 因果論霽山學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종국이 死亡할 당시 炫國霽山精舍에 있다가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용평스키장으로 就職하였다.

命造에서 보는 바와 같이 炫國女性形으로 人物이 우리형제중에

뛰어났으므로 일명 歌手 남진이라고 할 정도로 人氣가 있으므로

어디를 가던 就業은 잘 되었고 活動的이며 意慾的이었다.

 

12월 크리스마스 때 鄭女史가 나에게 저녁식사 招待를 했던 것이다.

당시 서울대학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던 민전이가 방학 틈을 타서 잠시

다니러 왔다고 하며 을 좀 봐달라고 했던 것이다.

선생님과는 觀相을 보지 않겠다고 約束했으므로 精舍에서는

을 보기 어려운 것을 鄭女史도 알고 있었다.

鄭女史 집이 霽山精舍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에 業務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서 민전이를 보게 되었는데 耳目口鼻가 또렷하고

方正했으며 가 바랐다.

나이어린 學生이지만 함부로 하기 어려울 만큼 威嚴을 갖추었다.

四柱를 보고는 누구도 서울대학에 어렵다고 했고 선생님조차도 서울대는 힘들다고 했는데 入學했다는 것이다. 진학하던 해가 甲子年이었기 때문인데 훗날 연구과제가 되어 정밀한 통변을 하면서 可能했던 문제점을 찾게 되었으니 甲子年子午沖 때문에 시험에 실수를 예상했을 것이나 오히려 子午沖하여 午中己土沖出하므로 背信星이 되는 甲木을 이루므로 暗神이 도왔음을 깨닷게 되어 부산지역에서 진학상담에는 선생님을 제치고 優位를 차지하게 된 일화가 있다. 앞으로 이점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전재될 것이다.

 

壬癸壬乙

子巳午巳

 

부친이 壬午生이고 모친이 戊子生이다. 김씨 가문으로 咸陽에서 出生하여 부산에서 成長했다. 外貌母親을 많이 닮았으며 父親長點을 닮았다. 格局은 서울대학이 分明한데 甲子年에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로 進學될 것이라고 보기에는 無理가 있었던 것은 事實이다.

 

을 보니 官祿宮으로부터 어느 곳 하나 빠진데 없는 人相이었으므로 激勵해주고는 察色을 보니 코끝에 暗雲이 드리웠고 山根에도 어두운 색이 비쳤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강서구 화곡동이라고 했다.

 

서울대학에서 화곡동은 서쪽인지라 방향을 보니 서쪽에 역시 暗雲이 끼었는지라 하숙집을 신림동에서 동쪽으로 빨리 옮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화곡동을 떠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었다. 영화배우 한소룡씨가 친척이어서 그 집에 하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올 겨울에 연탄가스로 病院에 급히 入院할 일이 생기거나 밤길에 逢變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는 가급적 속히 住居地를 옮겨야 厄運을 면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다음날인가 민전이가 서울로 올라와서 얼마 안 되어 연탄가스를 마시고는 大學病院入院했다고 鄭女史한테 전화가 왔었다.

 

죽지는 않겠느냐 하는 質問이었다. 그때 상을 본 기억으로는 봉변은 당할지라도 生命에는 支障이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주었고 鄭女史는 급히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던 逸話도 있었다.

 

鄭女史 집에 가기 하루전날로 짐작된다. 이때는 서울에서 사모님도 내려와 계셨다. 사모님은 부산에 오면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다가 가신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주방의 照明이 좀 어두웠다.

 

栢巖先生은 당시 회계사무실에 다니고 있었는데 退勤時間이면 자기 집이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霽山精舍에 들리고 했다. 이날도 퇴근하여 잠시 들렸는데 食事中이었으므로 주방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순간 백암선생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子孫宮에 근심이 꽉 차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鄭先生(이때까지만 해도 雅號가 없었기에...)집에 무슨 근심이라도 있습니까? 하니 아무런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가 입을 열지 말았어야 하는데 선생님과의 約束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주책스럽게 한마디를 한 것이 霽山精舍를 떠나야 하는 구실을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정선생의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래

오늘 入院하지 않았으면 來日入院하게 될 겁니다.” 하니

 

낮에도 通話를 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니 내가 觀相察色을 잘 본다는 것을 아는지라 내말을 무시하기엔 께름직 했는지 그 자리에서 집으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아무도 電話를 받지 않는다고 하며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음날 霽山精舍에 들려서는 사모님한테

 

어제 저녁에 禮山先生이 자기 얼굴을 보더니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여 집에 가보니 사실로

아들이 急性腎臟炎으로 입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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