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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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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11 16:16 조회1,8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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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정몽준 그리고 이회창 후보에 얽힌 일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솔직히 말해서 부산시민들은 뭣을 빼앗겼다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기억된다. 고연히 화를 내기도 했고 김영삼씨가 국가부도를 냈어도 원망이나 미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 않나 생각될 정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전 국민이 앞장서서 달러한푼이라도 아끼자고 할 때 비행기 타고 미국이나 일본을 왕래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비행기표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하며 소지하고 있던 달러며 금붙이 등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국난극복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모두 내놓았다. 그리고 나서는 한번도 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니 나도 지독하긴 했던 모양이다.

 

미국에는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이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모두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성년이 되었는지라 나의 보호가 필요 없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만큼 내 아들이기에 믿으려 했지 않았나 싶다.

 

어느날 부산롯데호텔에 있다며 한번 만나 뵙기를 원한다는 정몽준씨 연락을 받고 호텔로 방문했던 것이다. 그분에게 누가 될지 모르지만 정확히 태어난 시기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분의 말씀으로는 내가 일생 편하게 잘 살아왔으니 좋은 사주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 말도 틀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에 출마할 꿈이 있는 분이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다는데 약간 놀라움을 금치는 못했다. 악수를 해보니 손바닥이 비단결같이 부드러웠고 뼈도 문어처럼 유연하기 짝이 없었다. 역시 부호의 상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살결이었다고 본다.

 

이분도 이회창씨와 대결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었다. 호적에 올려진 날짜로 대통령 그릇을 만들어 보니 마침 술시로 하면 시상정관격이 되는지라 김영삼씨와 같은 구조가 되어 그렇게 정해놓고 보니 가능성이 엿보였는지라 아전인수하게 되었으니 욕심이 앞서면 눈이 흐려진다는 속담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는 것을 이때 실감하게 되었다. 몇 번 만나면서 선거전략에 관한 이야기도 해봤지만 매사에 적극적이질 못하고 중요하게 결정해야 할 때는 꼭 피하는 것이었다.

 

서서히 김이 빠지기 시작하던 중, 노무현후보와 단일화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무렵 노무현캠프에서는 민주당 대표였던 한화갑씨가 만나기를 청하여 서울 리베라호텔에 자리를 마련하고 미래 국회의원의 꿈을 꾸고 계시던 우의원을 비롯해서 제자들과 토론중이었는데 저녁 무렵 한 대표께서 방문하여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큰 절을 하는게 아닌가. 이때 한 대표를 처음 만났는데 예의범절이 깍듯하고 아주 겸손해 보였다.

 

지금까지 만나본 정치인 중에 한화갑씨만큼 예의바른 분은 보지 못했다. 그날 궁금했던 목적은 정몽준씨와 단일화가 이뤄지겠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래야만 이회창 후보와 양자대결구도로 대선을 치러 이기던 지던 최선을 다해 싸워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침 그날 저녁에 두 후보가 단일화를 결정짓는 날이었다. 그래서 단일화는 꼭 성사될 것이니 걱정마시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돌아가다가 노무현후보로 단일화가 성사됐다는 뉴스를 들었다고 했다. 그 후 노후보를 당선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자주 상의하기에 이르렀는데 나는 무조건 노무현후보가 당선된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지난번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안경낀 이회창씨와 양자대결이니 더욱 확실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당내에서는 많은 우려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시로 전화가 왔고 나는 믿음과 용기를 주며 위로만 해줄 정도였다. 대선유세가 한창이던 시기에 노무현캠프에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이 있었으니 경남지사 김혁규씨의 민주당 지지선언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일로 인해 경남지사공관에 찾아가 만나 뵙기도 했고, 다시 박연차 회장님이 경영하는 금호가든에서도 삼자상봉을 하기도 하며 미래정국과 대선결과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다. 이때는 난명학회 후학인 충남대 성철재교수도 동석했었고 모 대학교수도 여러분 있었다. 내가 노무현후보가 당선되리라고 하자 경남지역에 사는 분들은 나를 완전히 미친 사람취급했던 것이다.

 

어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는가?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7030의 여론조사도 그러하려니와 정치인으로서의 인지도 및 당시 한나라당의 조직력 등...한편으론 민주당에서는 반노 비노 친노 하며 사분오열이 된데다가 지금 새누리당 의원인 원유철의원은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철새가 되어 날아가기도 했던 것이니 상식적으로 노무현후보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 조차도 믿지 못할 때였기 때문이다.

 

김혁규경남지사를 만나 미래정국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노무현캠프를 도우면 최고위원자리를 보장해 줄것이며 기회가 되면 국무총리까지도 중임을 맡게 되리라고 했는데 김지사는 김영삼씨 덕분에 정계에 입문하여 지금의 지사도 되었으므로 아무리 미래가 보장된다 할지라도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완고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노무현정권에 들어서면 부득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게 되리라는 예언도 해줬던 것인데, 당시 분위기로는 차예산 선생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눈치였다. 당시 내말대로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아마도 쾌히 민주당캠프로 당적을 옮기고 노무현지지선언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결국 노무현정권이 들어서자 미련없이 당적을 옮겼기 때문에 유추해볼 수 있었던 문제다.

 

며칠 지나서 금호가든에서 박연차회장과 동석해서 식사하면서 차기정권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박연차 회장님도 전혀 내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아마도 취중에 노무현이가 당선되면 자기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씀도 했고 야채바구니를 나에게 던지기도 했었다. 후학이 아니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참지 않았을 것이나 성교수가 있어 그 수모를 참아냈던 것이다. 주석이 파하여 밖에 나와서는 미안했던지 노래방이나 가자고 하시는 것을 거절하고 돌아왔는데 그때 마음에 빚으로 느끼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는 항상 나에게 협조적이며 농장경영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좋은 일에 쓰라며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당시 모 대학교수를 비롯 김지사 및 박회장 등 여러분이 있었지만 성교수와 나를 제외하고는 이회창씨가 확실히 당선될 것이라고 모두가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회장은 사업가였다. 그러므로 노무현정권이 들어섰을 경우를 어느 정도 대비는 했으리라 짐작한다. 왜냐면 난곡 차예산의 예언을 아주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에게 호엄장담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간혹 의뢰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용기를 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몇 번이고 분명한 단언을 내렸을 때는 그만큼 확신이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많은 정객을 비롯하여 재계인사들도 예언한 대로 진행이 되고 있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정보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부산에 거주하는 한나라당 당직자나 골수팬들이 수시로 방문하여 이회창 대통령만들기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당선을 시킬 수 있느냐며 굿을 하라면 할 것이고, 부적을 쓰라면 쓰겠다고 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 분은 안경 때문에 낙선이 된다고 하면 안경을 벗기면 되지 않겠냐며 이회창 후보를 찾아가 내 말을 전하면서 안경을 벗겨보자고 까지 논의했는데 체질상 안구에 무슨 지방이 끼어 렌즈로 대체도 어렵다고 했다는 후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대선이 200212월이었는데, 내가 온라인공간에다가 2001518일에 노무현의 운세풀이를 하면서 장군이 큰칼차고 투구를 썼으니 전투에 나가 승전고를 울리게 되리라고 아래와 같이 올리기도 했었다.

 

아래 참고자료

노무현 ! 꿈과 소망은...

이름 : 蘭谷 번호 : 764

게시일 : 2001/05/18 () PM 10:50:04 (수정 2001/05/18 () PM 11:05:20) 조회 : 339

서기 1946년 음력 86일 진시생.

 

土 土 火 土

丙 戊 丙 丙

辰 寅 申 戌

卯 酉

 

癸 壬 辛 庚 己 戊 丁

卯 寅 丑 子 亥 戌 酉

62 52 42 32 22 12 1

 

1. 土金食神格食神制殺格이다.

 

2. 食神正格으로는 倒食이 만정하여 破格이 되었고, 食神制殺格으로 名振天

하기에 不足함이 없다 할 것이다.

 

3. 正格으로는 敵軍이 많으므로 生秦死楚하여 亡命國家建設하였다.

 

4. 壬水援軍運當到하여 敵軍降伏을 받으니 到處마다 戰利品이다.

 

5. 壬午年에 큰칼높이 뽑으려 하나 民衆없는 戰場에 외로운 將軍이로다.

 

6. 寅運에 다시 敵長長生하니 亦是 生秦死楚하여 勇猛을 떨칠것이다.

 

7. 食神格財星民衆인데 渴井馬를 타고 있으니 用人無糧之恨이다.

 

8. 爲人正直하고 勇猛하여 勝戰鼓는 힘차게 울려보나 民衆이 없구나.

 

 

財星軍糧米가 되므로 財星없는 君王아래서는 百姓塗炭에 빠지고,

官星없는 君主라면 國法混亂해지는 暗神에라도 財官存在해야

國泰民安하게 된다고 蘭明學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명리학 연구자료이므로 오해 없기 바랍니다.

 

 

위 명조풀이 해설

2항내용을 설명하자면 식신정격이면 태평한 일생을 영위하게 될 것이나 파격이 되었으니 편한 밥먹고 살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며, 그래서 적과 싸워서 이기므로 이름을 천하에 떨치기에 부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 전 대통령은 항상 친한 사람보다 적이 많았다는 이치라 하겠다.

 

3항내용은 정격으로 보면 고향에서는 반대세력이 많은지라 고향을 버리고 타향으로 떠나서 망명국가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김해에서는 국회의원에 출마해도 낙선이 되지만 종로에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호남지역의 유권자에게 덕을 입게 된다는 뜻이다.

5항은 대선당시 민주당내에서도 일치단결하지 못하고 비노 반노 친노로 사분오열되며 정몽준의 배신도 이미 예고되었던 것으로 결국 외로운 투쟁이 될 것을 예고했던 것이다.

 

6.7.8항은 위인은 정직하고 준수하나 민중이 없다는 것은 열린 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이 될 것을 예고했던 것이고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봤던 내용이다.

국법이 혼란해진다고 한 것은 결국 선거법을 위반하므로 탄핵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으니 아무리 천하를 움직이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타고난 팔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검증이라 하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진정으로 지금의 대통령과 비교가 되는 훌륭한 인물이었음을 이제사 느끼게 하는 위인적기질을 지녔다 하겠다.

 

퇴임 후 봉화마을에서 사고를 당하실 것도 이미 사전에 예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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