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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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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23 16:23 조회1,2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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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鄭國龍(栢巖)로 부터 電話가 왔던 것이다. 仁山莊病院 應急室入院했다는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弄談하시네,” “仁山莊을 어제저녁에도 만났는데 멀쩡하시던데

무슨 入院을 하느냐하고 웃으며 말 했더니

車先生은 자기 말을 왜 믿지 않느냐大東病院에 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방에서 大東病院은 걸어서 2분 거리다. 먼 길이 아니므로 손님을 待期시켜 놓고 달려가 보니 두 사람의 書記가 연탄가스를 마시고는 산소통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침에 鄭國龍씨가 精舍에 갔다가 발견하고는 救急車를 불렀던 것이다.

 

霽山精舍因緣이 있는 사람들은 다 모였던 것 같았다. 이병철씨의 運轉技士였던 장병우씨도 보였고 몇몇 선생님과 親分이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病院側에서는 生命에는 支障이 없으므로 2~3退院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것으로 記憶된다.

 

濟州道에도 連絡이 되었으므로 선생님이 그날 돌아오셨다. 非常이 걸렸던 것이다.

물론 나도 霽山精舍에서 事故對策 마련으로 奔走했고, 정국용씨와 장병우씨 등 知人들이 對策會議를 하게 되었던 것인데, 鄭國龍씨는 이때 職場退職하고 命理工夫를 하려고 決定段階에 있었던 것으로 推測된다. 왜냐면 以後 約 3~4個月 程度 지나서 霽山門中後學이 되었기 때문이다.

 

對策會議에서 異口同聲으로 선생님의 體面도 있고 하니 優先 所聞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데 意見一致를 보았으며 當分間 선생님이 相談하실 수 없을 것이니 禮山先生이 선생님의 자리 좀 맡아주어야 할 것이라는데 뜻을 같이 했던 것이다.

 

最終決裁는 선생님의 意見에 달렸던 것이다. 장병우씨는 恒常 나를 信賴하였으며 선생님을 代身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던 분이었고 鄭國龍씨도 나의 能力疑問을 갖지 않는 분이었다. 다만 酉山이라는 사람은 내가 精舍에서 나온 다음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내가 선생님께 人事드리러 갈 때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서로를 理解하지 못하였으나 顔面은 있는 터였다. 濟州道에서 선생님이 到着하셨다. 그날은 아무런 對策 없이 쉬었고 다음날인가 선생님이 相談을 하신다고 해서 業務進行하게 되었으니 酉山仁山莊이 하던 接受를 맡았고, 내가 代筆書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아마도 鄭國龍씨가 入門하게 되는 契機가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全的으로 精舍勤務한 것은 아니고 사람이 必要할 때마다 일손을 도왔던 것으로 生覺된다.

 

이 무렵에 서울에 있는 白民先生故人이 된 박장열군과 같이 몇 번 드나들었고, 나는 수안동 사랑방 業務가 있으므로 出退勤하면서 나의 일보다는 霽山精舍의 일을 優先으로 하며 지냈다.

 

霽山精舍에서 退勤하여 사랑방에 오면 늦은 時間임에도 나를 찾아와서 기다리고는 했다.

어떨 때는 退勤해서도 밤늦도록 相談해주기도 했다. 심할 때는 子正이 넘도록 10餘名까지도 相談을 했다. 몸은 疲困해도 精神疲困하지 않았다. 霽山精舍出勤하기 전까지는 相談料를 만원 받았지만 霽山精舍出勤하면서 부터는 相談料負擔이 되는 분들은 늦은 時間임에도 不拘하고 사랑방으로 몰려왔던 것이다.

 

그런 問題發生하므로 二元相談料混亂을 막기 위해서 霽山精舍와 똑 같이 2만원을 받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랑방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줄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乙丑年 봄부터 入試生들의 四柱를 봐준 것이 앞에서 紹介한 바와같이 相當數 敵中했기 때문이었다. 患者들도 을 더 쓰고 싶다고 했고 進學生適性分析이 거의 正確했으므로 豫想學點未達하는 學生들은 再修를 할 것인가, 어느 學校, 무슨 專攻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하여간 入試마감이 될 때까지 奔走한 나날을 보냈다고 記憶된다. 霽山精舍에는 接受書記가 따로 있었고, 선생님은 대체로 9부터 相談하시므로 疲困해도 遲刻은 안했다. 간혹 지각을 하더라도 鄭先生이 도와주었으므로 큰 問題는 없었다. 그러므로 밤늦게라도 나를 찾는 問客은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는 돈을 벌기 해서가 아니었다. 나를 그만큼 認定하는 顧客에게 報答한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이해를 넘기면서 다음해까지 學生進學適性을 묻는 顧客이 부쩍 늘었으며 내가 美國으로 떠난 以後에도 入試시즌과 身數시즌에는 歸國하여 나를 찾는 顧客을 위한 相談을 했을 만큼 入試生 進學指導卓越했다는 正評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霽山精舍에서 선생님이 濟州道로 가셨던 것도 入試철의 心的負擔이었다고 해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다른 分野는 어느 누구도 선생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지만 學生適性進學問題에서 만큼은 한 두달 내로 結果가 나타나는 關係로 하나라도 잘못 判斷되었을 경우 自尊心名聲傷處가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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