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회유 > 지혜의샘

본문 바로가기
즐겨찾기

회원메뉴


농장소식

대야농장 상담문의

080-7000-9988
010-3585-0188
054-437-1032

평일 AM 09:00~PM 20:00

토요일 AM 09:00~PM 18:00

대야농장

지혜의샘 | 100% 국내재배 신선한 야생블루베리 목록

선생님의 회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09 16:21 조회1,735회 댓글0건

본문

壬申年 봄으로 記憶된다.

이때 나는 崔大師님이 계신 智異山의 절에 초파일 行事를 도와드리기 위해 매우 바빴던 時機였으니 4初旬으로 記憶된다. 선생님께서 直接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나는 이때 양정동 연산전화국 앞 [사랑방]에 있을 때였다.

 

가끔씩 선생님이 電話도 해주셨지만 이날은 氣分이 매우 좋으셨다. “그래 요즘 잘 지내시는가?” 하셨다.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을 때는 가까이 있는 한 禮訪하는 것이 도리다. 아마도 이때가 霽山精舍接受 代筆書記가 마땅치 않으셔서 곧 整理하고 德雲精舍로 가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시기다. 구체적인 말씀은 없었지만 문옥당 노씨가 辛未年 秋夕 때 나왔다고 하였고 그 以後에 생겨난 일들을 추측해 볼 때 그러했을 것이다.

(辛未年에는 카지노에 沒頭하던 時機였으므로 精舍에 들리지 못했다.)

 

業務 마치고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하니 오늘 저녁은 鄭博士約束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시므로 좀 일찍 精舍로 갔다. 선생님은 外出準備를 하고 기다리셨다. 鄭博士가 사는 대신동 삼익아파트 入口日食집이 있는데 전부터 자주 들리시는 곳인데 鄭博士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정박사와 나는 상호 호감을 가졌던 사이로 만나면 친구같이 선배같이 비교적 우호적이었으므로 선생님께서 나에게 무슨 부탁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鄭博士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보면 반가워 하셨다. 食事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藥酒도 나누며 오사케 한잔씩 돌리자 선생님께서 선비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退溪門中에는 재물이 넉넉하니 훌륭한 後學輩出시켰고,” “栗谷窮塞하여 後學을 기르지 못했다.“ 라는 말씀을 하시며 당신은 50억 원은 된다고 하면서 선비로서는 그 程度하지 않겠나.” 하고는 정박사를 바라보고는 웃으며 안 그렇습니껴 정박사하니 정박사가 말을 받았다. “~霽山先生 말이야 어디 하나 틀리는 데가 있어야지~.!”

周知事實을 나에게 묻긴 왜 묻소.” 하며 주고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씀은 내가 後學養成執念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 돈 없이는 後學養成의 꿈을 實現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듯 했다. 맞는 말씀이다. 돈 없이 어떻게 後學養成을 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항상 自身滿滿했다. 이때 드린 말씀 중에 저도 그만한 能力이야 없겠습니까.’

뜻만 세운다면 히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이어,

가지고 實踐하지 못하는 근심보다는’ ‘갖지 않고 마음편한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하며

돈보다 으로 할 수 있다면 더 낫지 않겠습니까.’하자 禮山은 아직 멀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너무 돈에 대한 執念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淸高한 선비라 할지라도 物質萬能時代에 돈이 없으면 하다는 것이다. 鄭博士車先生 말도 맞지 않소.“

霽山先生은 자기말만 주장 하는 것 같다고 生覺되지 않소.!”했다.

鄭博士는 대체적으로 허허 하시며 잘 웃는 분이다.

霽山先生님도 鄭博士만 만나면 비교적 잘 웃으셨고, 한 번도 硬直

모습을 보지 못했다. 氣分이 좋을 때만 鄭博士를 만나는 것 같았다.

 

食事를 마치고 鄭博士 아파트에 가서 도우미 할머니가 끓여주는 차를 마시고 좌담하다가 밤늦게 歸家하려는데 來日 어디 좀 갈 데가 있는데 時間을 낼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얼마든지 時間은 있다고 말씀드리자 웃으시며 사랑방은 비워도 되느냐.” 고 물으셨는데

사랑방은 주인이 없으면 공방이라고 말씀드리며 한바탕 웃고는 호텔에서 같이 宿泊하자고 하시므로 가까운 코모도 호텔로 갔다.

(鄭博士님은 50대에 喪妻하시고는 獨身으로 줄곧 사시는 분이다.)

 

선생님은 나의 이러한 性格을 너무도 잘 아셨다. 가자고 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性格을 말이다. 선생님이 가자는 곳은 마다할 理由가 없다. 선생님을 隨行하면서 로운 일이 없었기도 하지만 한 말씀 두 말씀을 들을 때마다 배우고 깨달을 것이 많았고 師弟間의 끈을 수 없는 깊은 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鄭博士댁에 들려 함께 東亞大學校 뒷산에 있는 내원정사로 갔다.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지만 꽃동네가 자리 잡고 있으므로 4월 초파일 行事준비로 길에는 온통 아름다운 꽃으로 丹粧이 되어 있었고 頂上에 오르니 내원정사에서 運營하는 幼稚園을 지나 솔밭 길을 조금 지나자 雄壯한 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 내원정사를 創建한 주지스님은 黃海道 사람으로 육영수 여사가 佛事를 많이 도와주었고 그때 이곳에 사찰건립을 許可받아 이제야 道場(도량)完成하게 되었다는 說明을 해주셨다. 주지와 총무를 잘 아는 듯 했고 鄭博士佛心이 깊은지라 내원정사에 자주 참배하는 분이었다.

 

절에 들어가자 주지와 총무스님이 반가이 맞아주었고, 부처님오신 날 行事準備로 바빴다. 선생님이 禮山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도량(道場)을 하나 만들어야지하시며 총무스님에게 寺刹建立 하는데 얼마나 佛事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당시 8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食堂施設2천명이 동시에 먹을 수 있는 공양을 지을 수 있는 현대식 설비가 되었다고 자랑도 했다. 선생님은 대단하다며 감탄하셨다. 이날도 선생님과 鄭博士하고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는 선생님을 精舍에 모셔드리고 돌아왔다. 이날 갈 곳이 있다고 하신 것은 내원정사의 壯嚴한 도량을 보고 느껴보라는 意圖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초파일이 지나고 나서 다시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내가 한가할 때는 비교적 날자 기억을 잘 하는 편이다. 몇 년 몇 월 몇 일까지 거의 정확히 기억하는데 업무가 분망할 때는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명조도 한번 보면 거의 기억을 하는 편이지만 사람이 몰려들고 어수선할 때는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두뇌의 메모리기능이 적은 탓인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초파일 行事를 마치고 뒷수습이 끝났을 무렵이니까 아마도 음력 4월 보름 전으로 기억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야농장 | 대표 : 차윤득 | 사업자번호 : 607-06-67726 | Tel : 054-437-1032 | | 팩스 : 054-437-1034
주소 : 경북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559(신주소:대야길 44-109) | 이메일 : daeyablueberry@hanmail.net
통신판매번호 : 제2008-경북김천-0007호
Copyright © 대야농장.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