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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첫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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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13 16:20 조회1,5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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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18일 미국에 도착하여 한 달 정도 쉬면서 교민사회의 정보를 수집하고 교민회와 교민봉사회 등을 두루 방문하여 여러 인사들을 만나봤다. 우선적으로 두 아들의 입학 문제로 동분서주 하면서 어느 곳으로 정착해야 할 것인가를 고심하게 되었다. 미국이민의 첫째 목적은 자식들 교육이었으므로 모친이 계신 샌프란시스코로 가려고 했는데 큰 아들이 사계절이 있는 시카고가 좋겠다고 하므로 시카고에 교민들이 많이 사는 로렌스 지역 근처로 정착했다. 3월에 입학을 시켜주고는 곧 운명상담실을 운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큰 아들의 운명구조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甲壬戊壬

辰申申子

 

사주가 한습한 듯 하나 양력 89일인지라 한창 여름방학때이니 열기가 많은 계절이라 구태어 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고로 추운지방에도 잘 적응이 된다고 분석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리스 같은 곳은 의 기운이 강한 곳이고, 시카고는 가 왕성한 지역이다.

사주에 신자신삼합이 되어 汪洋인지라 많은 로서 제방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모두 바다로 흘러가는 이치니 반드시 用神으로 삼아야 하므로 본인이 시카고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욕망과 의욕이 강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명리학으로 정착을 도모 한다면 당연히 당시 정보로 봤을 때 50만의 교포와 1백만의 교포가 사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로 가야 했을 것이며, 7만정도의 교포가 살고 있는 시카고에 정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카고에 이민하여 정착했으므로 아는 사람도 없어서 교포지에 광고를 냈던 것이다. 여기서도 사랑방이란 간판을 걸고 평생사주 차예산운명상담실이라고 했다. 한국일보지사와 중앙일보지사가 있었는데 교민회에 문의하니 한국일보 구독자가 많다고 하므로 우선 한국일보에 운명상담실 소개를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각으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광고가 나가자 하루 평균 10여명씩 방문하는 것이었다.

 

주로 상담실을 찾는 교민은 대부분이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었으며 의사와 변호사도 더러 있었고 교편생활을 하는 분들도 자녀교육문제로 인하여 상담실을 방문했다.

 

아마도 첫 손님으로 찾아온 분은 시카고대학원생의 안내를 받아 이태리 유학생이었다고 기억된다. 첫 손님부터 어려운 관문에 봉착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외국인 사주를 본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본인이 아니고 자기 부친의 사주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못 보겠다고 물러날 수도 없는 일. 우선 명조를 기록해놓고 살펴보니 한국사람이었다면 화학섬유무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였으므로 이태리의 특산물이 뭣이냐? 고 물었다.

 

대답인즉 羊 牧畜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부친은 羊毛무역업을 하는구나 하고 통변했더니 실로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 무역센터에 자주 오신다며 신기하다는 듯 영문으로 번역하여 기록하는 것이었다. 일차관문을 통과했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가족관계를 통변해주었더니 역시 인과법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하였는데, 단지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자기네들끼리 속닥이는 소리가 맞는다는 것인지 틀리다는 것인지 얼굴빛으로 읽지 않으면 감이 잡히지 않아 답답했던 것이다.

 

이 후에도 미국변호사며 의사를 비롯해서 많은 인사들을 보게 되었는데 한국여인과 국제결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도 태어난 地氣運命의 영향을 그대로 품수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거주하는 지역의 地氣에 따라 흥망성쇠가 좌우되는 것을 검증하기에 부족이 없었다. 그래서 대형 미국지도를 구입하여 병풍처럼 벽에다 걸어놓고 수시로 오행분류에 주력했던 것이다. 미국내 자체만으로도 대륙이 되어 오행이 확실했고, 地靈의 작용력이 한국보다도 더 강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번은 미네소타에 있는 한국일보지사장의 초대를 받아 5~6시간을 드라이브하여 쌍둥이 도시로 갔는데 역시 한국부인과 결혼한 중년의 미국인이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다며 사주를 보겠다고 하는데 命造를 써놓고 눈치를 보았는데 무슨직업을 가졌는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운이야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해주면 되겠지만 직업에 따라 흥망의 통변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우선 자영업인지 직장인인지 기술자인지 전문직인지 분간이 안 되면 실수를 하게 되는 법이다. 부인의 인과를 보니 귀격은 아니요 그렇다고 미국사회에서 貴賤을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직업을 물어서 감명한다면 신뢰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그렇다고 그냥 헛소리로 통변하기도 어려웠던지라 한마디만 묻지 않을 수 없었는 고로 당신 한국에 사는 사람 같으면 큰 도끼를 들고 대장간에서 망치질이나 해야 하는데 미국에는 대장간이 없을 것인즉 도저히 뭣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라고 하니 방안에 모였던 부인들이 박장대소를 하는데 본인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휘둥그래지며 영어로 왜 웃느냐? 고 묻는 눈치였다.

 

알고 보니 매케닉이었는데 자동차 하체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직업이 되어 매일 햄머질을 하며 산다고 하여 다 같이 폭소를 터트렸던 일화였다. 아마도 내가 미국에서 감명한 사람중에 유일하게 가장 지위가 낮았던 사람이었지 않나 생각었다. 그러나 한국사고였음을 바로 깨닷게 되었다. 매케닉 기술자지만 연봉이 상당했고 고급저택에 살며 출퇴근때마다 포르쉐를 타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이 한마디로 그 사람의 사주를 다 봤던 것이다. 이곳에서 이틀정도 미국인을 비롯해 한국교민의 사주를 봐주게 되었는데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한국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분은 식당업, 식품점, 세탁소, 건물청소직, 옷가게, 잡화점 등이었다. 그 후에도 초청이 왔지만 방문할 시간이 없어 그분들이 시카고까지 몰려와서 내가 귀국할 때까지 많은 고객이 확보됐고 영구귀국해서도 부산까지 방문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문제라면 처음에는 한국 환경과 똑같이 통변했으나 적중률이 틀린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팔자에 부자복을 타고 난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사업을 하여 축재를 하는 반면 이곳에서는 평생 보장받는 직장에 안주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한국에서는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복 그릇을 타고난 사람들이 개인 사업이나 장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패도 하고 일시적으로 돈을 벌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은행론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직장이 확실한 사람은 정년퇴직할 때까지 직장에서 보증을 하고는 필요한 자금에 한해서는 얼마든지 론을 해주기 때문에 주택도 마련하고 보트를 사가지고 아주 여유롭고 호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돈을 모아 자식에게 유산도 줘야 하고 집도 마련해 줘야 하지만 그들의 생활습관은 자식은 국가복지제도가 잘 되어있어 등록금도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론을 활용할 수 있었고 집도 부모에게 물려 받는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자동차정도만 지원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업부자복을 타고난 사람들은 영구직장으로 안정하며 휴가철이면 보트타고 부호들 틈에 끼어 화려한 생활을 하였고, 캠핑카도 소유하며 화려하게 살아가는 정신이 고착되어 축재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식에게 유산 줄 생각도 없이 자신들의 행복만을 위해 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의 사고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니 당연히 감명에 참고하지 않고는 적중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녀는 국가에서 모든 문제를 보장해주는 혜택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녀를 방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민하여 정착하고 아마도 4월까지는 환경에 의한 운명적 영향을 연구하게 되었고 5월부터 본격적인 대중상담에 들게 되었는데, 두 번째로 힘든 일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한사람 보러 왔다가 두 세 사람을 보기도 하므로 시간개념이 그다지 숨막히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시간약속을 하면 여차 없이 지켜줘야 했던 것이다. 오후 2시에 방문하겠다고 약속이 되면 기다렸다가 들어오는지 정각 2시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틀린다고 해도 1~2분 간격의 여유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숨이 막힐 지경인 것이다. 어찌 운명을 상담함에 교과서같이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통변하고 의문점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수 십 분이 걸릴 수도 있고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한사람만 보려고 왔다가는 식구를 다 보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 인생 상담이라 할 것이다.

 

한번은 한모씨 의사가 낮 12시에 약속을 했다. 아침부터 방문자들이 한 시간 간격으로 줄을 서있는데 조금만 지체하면 한 시간 정도가 지체되는 것은 보통인 것이다. 그런데 정각 12시에 들어와서는 자기가 약속한 시간이므로 상담하고 있는 사람더러 비켜달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미국의 사회 환경인 것이다.

 

그렇게 까다롭게 하던 한모 의사가 내가 귀국한 후에도 문의해오곤했지만 지금은 상담해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상담료는 온라인으로 잘 보내주었으나 시카고에 蓮谷후학이 자리 잡고 운명상담을 잘 하고 있는 관계로 나를 대신하여 상담해 주기 때문이다.

혹 연곡후학이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물어서 감명하라고 일렀는데도 하나도 묻지 않고 교민사회에서 신뢰받고 있다는 소식을 가끔씩 듣는다. 지금은 일본인이 많이 사는 시애틀로 이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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