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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동아식품 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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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18 16:19 조회1,8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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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식품사건

시카고 교민사회에 교포가 운영하던 비교적 큰 규모의 동아식품이 있었다. 그 부인이 사주를 보러 왔었는데 비교적 식품가게를 하여 성공했다고 할 정도로 여유로웠다고 했다. 그런데 그해가 정묘년이었는데 남편사주를 보니 원행을 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액운이었다. 그대로 기록해주고 절대로 금년에는 귀국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는데, 그해 남편이 서울에 꼭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나는 부산에서 상담 손님들이 여러분 대기하며 찾는지라 일시 귀국했었는데 그해 여름에 동아식품 남편께서 서울에 왔다가 서교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사주를 볼 때만 해도 뭐 그러겠나 하고 믿지를 않았는데 현실로 다가오자 이 소식을 시카고 한국일보 김부장에게 이야기 하므로 신문에 소개되는 바람에 차사주의 인기가 더욱 충천하게 된 일화다. (시카고에서는 차사주로 알려졌었다.)

 

이 신문이 조지아까지 보급되었던 모양이다. 가을쯤 시카고에 갔더니 조지아에 사는 손이식사장이라며 나를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물론 출장비는 두둑히 챙겨주겠다고 하여 역시 3.000불을 받기로 하고 내가 소유했던 5700cc급 캐딜락브롬을 타고 영어에 능숙한 졸업생을 가이드로 고용하여 방문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쉬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동차 휠캡 네 짝을 모두 도둑맞았던 것이다. 처음으로 당해보는 황당한 도난이었다. 조지아에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데 사소한 물건이라도 도둑질을 흔히 한다는 것이었다. 캐딜락 휠이 네짝이면 당시에 3.000불이나 되어 그날 출장은 손해를 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되돌아 올 수는 없지 않은가.

 

손사장 내외가 모텔로 벤츠 600을 타고 왔던 것이다.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여 손사장댁에 갔는데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미국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하여 각처에 모텔이 15개나 있다고 했다.

 

사주를 보게 되었는데 걷 모습과 달리 속이 텅 빈 팔자였다. 아마도 정통학문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눈치에 속고 말았을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제산학에 물리는 얻었고 관상까지 겸하였으므로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손사장이 수단이 좋아서 은행론을 잘 활용하여 모두가 빚으로 만들어진 재산이므로 바람만 불면 휙 날아갈 그런 재물이었던 것이다. 한국에 다니러 올 때마다 사주를 봤다고 하는데 크게 성공하여 재벌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 눈에는 검불과 같은 虛財였는지라 당신 금년을 넘기지 못하고 부도 맞게 되리라고 말하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사실 이런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를 비싼 복채를 주고 불렀겠나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안 되어 결국 손사장은 영국계 은행에서 거래중단통보를 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거래하던 은행이 모두 자금동결을 시키기에 이르니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나중에는 부인이 식당에 나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던 소설 같은 일화가 생겼던 것이다. 손사장의 말을 빌면 한국에서 백운산이란 분이 미국에 왔을 때 잘 알게 되어 그 분을 믿고 그 동안 부동산으로 번 돈을 재벌 될 욕심에 전액 투자하고 은행 론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손이식사장의 내막도 미국교민사회에서는 크게 쇼크를 일으킨 사건으로 알려졌다.

 

한번은 인디애나주에 산다는 庚辰生 장사장이라는 분한테 전화가 왔는데 역시 출장감정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복채는 달라는 대로 드리겠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더 많이 요구할 수는 없었으므로 3.000불을 받기로 하고 역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떠났다. 시카고에서 약 6시간 남짓 드라이브하여 도착하니 해가 저물었다. 멕시칸 음식파는 식당인데 규모가 매우 커보였고 주차장도 운동장만 했다. 저녁식사 때가 되었는지라 식사부터 대접을 받았는데 처음 먹어보는 맥시칸 음식이 무척 매웠다. 퇴근시간이 됐다며 집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어느 호숫가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신축하는 중이었다.

 

그날은 늦었으니 잠을 청했고 아침에 일어나더니 가벼운 주스와 우유로 목을 축이고는 아침공기 쐬자는 것이었다. 같이 나갔는데 역시 벤츠600과 고급스포츠카가 차고에 있었는데 벤츠를 타자고 하더니 호수 선착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도착해보니 요트가 여러 대있었는데 2층 요트에 오르더니 호수로 질주하며 즐기는 것이었다. 하여간 좋은 경험을 하는구나 하고 호수 몇 바퀴 돌고는 집에 돌아왔는데 사주를 봐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사주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자기가 유학을 와서 졸업하고 멕시칸 식당을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며 자랑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결국 자기 성공사례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약속한 3.000불을 내 놓으며 잘 가시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성공하고 나서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자랑할 곳도 없는 외로움이 복 바쳐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며 쓸쓸히 발길을 돌렸던 일화다.

 

 

주류업자 간에 구멍이 나다

1989년 여름이었다. 시카고 브로드웨이에 사는 부인이 방문하여 가족들 사주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남편이 甲戌年 庚午月 甲申日이었다. 마침 한국에서 막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였는데 제산선생님과 학술토론이 있어서 口傳秘訣 하나를 새로이 배웠던 차였는데 그분의 남편이 비전의 전형적인 모델이었던 것이니 우연치고는 참으로 재밋는 사건이 전개되어 나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던 일화가 되었다.

 

내용인즉 당신 남편이 앞으로 3년 후면 배에 구멍이 나서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는데 미국사회에서 배에 구멍이 난다면 총을 맞을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강도를 조심하라고 일러주며 다시 午月生甲申日柱로 태어나면 가 부족하여 갈증이 심할 것이므로 술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두주불사라는 것이었다. 실로 申金은 물상으로 술독에 해당하므로 술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과음으로 인해 간장병으로 수술을 받게 될 것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만약 이런 팔자가 가축을 기르게 되면 소뿔에 받쳐서 배에 구멍이 난다고도 통변이 가능한 경우라 하겠다.

 

사실 제산선생님의 구전비결에서 소를 기르다가 소뿔에 받쳐서 배에 구멍이 났다는 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 하니까 리쿼스토어(주류판매업)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로드웨이는 흑인밀집지역이라 그렇다면 흑인강도를 당하겠구나 하는 우려를 했던 것이다.

 

나의 유명세가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예방대책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리쿼슽토어를 폐업하라고 일렀지만 평생 생업으로 삼는 사업을 정리할 수는 없는지라 그 부인도 다각도로 고민 끝에 자기 친척한테 맡겨서 운영하기로 잠정결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럭저럭 1992년도가 되었는데 신년신수를 보러 다시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사고가 없었으므로 당해 연도에 이르렀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역시 지난번 감명했을 때와 똑 같이 권총강도를 우려했던 것인데 친척에게 맡기려 했으나 수익의 절반정도를 인건비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냥 남편이 조심하며 경영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방범시스템은 완벽하게 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운이라는 놈은 잠자다가도 찾아오는 법이라 일단 당할 때 당하더라도 조심하여 지낼 수 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국으로 왔었는데 그해 내가 지적해준 7월에 드디어 앰블런스 헬기가 뜨고 시카고 교민사회에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서도 아주 희귀한 일이 생겼던 것이다. 총을 맞은 것이 아니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여 응급실로 갔는데 과음으로 인해 간에 구멍이 났다는 것이었다. 긴급히 간 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건지기 어렵다고 했다. 남의 간을 돈 주고라도 사서 이식을 해야 하는데 응급실에서 당분간 생명은 유지시킬 수 있지만 두 달 내로 이식하지 못하면 생명을 건질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렸다고 했다. 결국 그해 9월에 사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시험대에 오르게 됐는데 죽은 사람의 사주를 가져와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기도 했으니 나의 신통력을 시험해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애쓴 흔적이 있다.

지금도 복사본이 보관된 명조인데 연구생들에게는 소개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이야기로만 소개하겠다.

 

1.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甲子生(1924) 남자다. 늙은 나이에 평생사주를 봐달라는 경우는 극히 드믄 일이다. 그런데 이분이 자기 평생사주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당시에 자기 직업을 정리하거나 후손에게 유산을 물려줄 일이 있거나 여생을 어떻게 유익하게 마무리 하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달리 생각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이분도 시카고에 살다가 노후를 대비하여 환경 좋고 기후 좋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분이었는데 사주를 보니 아들이 둘이 왔으나 하나만 임종한다고 기록해 드렸다. 당시 병술생(1946)과 그 중간에 딸은 출가했고, 작은 아들이 정유생(1957)이었다. 큰 아들과 막내아들의 나이차가 11년이나 되는 것은 중간에 딸이 셋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딸들은 모두 출가하여 성공한 케이스고 아들 둘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들 하나만 임종을 하겠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일자만 임종한다면 아들 하나는 먼 곳에 살면 액을 면하지 않겠냐고 위로해주었다.

 

마침 작은 아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으니 그럼 작은 아들이 임종하겠구나 했는데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아들이 사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큰 아들은 병술생으로 당시 40대 중반이었다.

 

한국에 자주 왔으므로 한해 입시상담을 마치고 시카고에 들어왔는데 어느 부인이 사주를 봐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는 듯 첫 손님으로 맞게 되었다고 기억된다.

 

병술생이었다. 그렇지만 병술생이 한 두 사람이 아니므로 지난해 감명했던 샌프란시스코 영감의 아들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으나 명조를 보니까 살아있다고 보기 어려운 운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 시카고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당장 시카고를 떠나거라 내일이면 늦을 것이라고 하니 비로소 실토를 하는 것이었다.

 

술 먹고 집에 와서 이층계단을 오르다가 떨어져서 사망했다고 했다. 그런데 사망원인을 묻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생각으로는 부부간에 술 때문에 불화가 심했다고 하며 이층침실로 올라가는데 그 처가 밀쳐서 죽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경찰에서는 실족사망으로 처리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었다. 물론 처의 사주를 보니 가족의 직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살아있을 때 물었으면 별거를 시키든지 방편이 있겠으나 이왕지사 사망한 사람 때문에 생사람까지 괴로움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달래서 보냈던 일화다.

 

사실 죽은 사람의 사주를 내밀고 봐달라고 하는 것은 나를 시험하려 했다는 괘씸한 생각에 불쾌했지만 여러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있는 법이니 어쩌겠는가? 역시 이 사건으로 소문이 퍼져서 당시 시카고에서는 나에게 사주를 보기가 무섭다고 했다. 내가 죽는다고 한 사람들은 거의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유명한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이 퍼지게 되자 그 다음부터는 죽을 사람을 직설로 말해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부드럽게 인생 휴가운이니 조용한 전원생활이나 하라고 우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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