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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건재 회장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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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21 16:19 조회1,9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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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건재회장의 일화 (가문조상의 음덕과 국가 환경의 음덕으로 대성한 분이다.)

시카고 교민사회에서 배건재회장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대박을 터트린 인물이기도 하려니와 금융계며 호텔 숙박업계며 골프장 등 교민 중에 대재벌이기 때문이다.

이분을 만나게 된 것은 1987년도 이민첫해였다.

 

갑술생(1934)으로 Bay케미컬이란 조그마한 화학회사를 경영하던 분이었는데 부산태생이다.

 

사주를 보면 일확천금의 횡재수를 타고나신 분이다. 그것도 독일이나 미국이란 곳에서...한국에 살았다면 그런 행운이 과연 도래했을까? 아니다. 이분의 명조는 난곡정사 횡재궁에 소개한바 있다.

 

나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횡재가 있은 다음이었는데 그때 은행인수문제 골프장 확장투자, 호텔 경영 가족관계 등에 관한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포스터은행은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제일은행을 추가로 인수하려던 시기였다.

 

사랑방 차예산 평생사주가 교민사회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있었으므로 교인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생각되던 시기였다. 이분이 나에게 방문할 때가 53세였다.

주로 예약방문이었기 때문에 한분씩 개별상담을 할 때였다.

 

점잖게 생긴 중년신사가 내방하여 차 한 잔 대접하고는 착석하여 정면으로 대좌했는데 이마가 빛나고 조상 음덕궁이 유난히 밝아보였다고 기억된다. 우선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부산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엔 언제 들어오셨냐고 하니 동아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유당 때 먹고 살기도 어려운 시절에 유학을 왔다는 것은 가업이 번창했다는 증거라 하겠다. 속으로 생각하기로는 어쩐지 조상 음덕궁이 밝더라니...하며 명조를 기록해놓고 보니 생김새와 똑 같았다고 생각되었다.

 

당신에겐 祖上(이름항렬)家門(姓氏)의 음덕에 의해 행운이 많은 분이다. 또한 지덕도 품수하였으므로 지금 美國에 살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행운의 구세주를 만난 격이다. 라고 첫마디를 읊었다.

 

실로 사주에 庚金辛金이 임했는데 庚金은 독일이요. 辛金은 미국이다. 이때 진실로 제산학의 물상통변이 이렇게 신기하게 맞아떨어질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다시한번 신비한 물상이론을 제창하신 제산선생님께 숙연해졌다고 회상해본다.

 

그런데 어떻게 독일과 미국에서 많은 행운을 받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막은 상세히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運路를 보니 30대 중반에 일확천금의 횡재수가 독일과 미국에서 오게 되었는데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학업을 마치고 성씨가 가 되어 베이캐미컬이란 조그마한 화학회사를 차리고 결혼했는데 사업이 부진하여 고전하면서 부부이별까지 하고 귀국하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독일에 있는 바이엘제약회사가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상표등록을 하려고 했는데 미국발음으로 베이어나 바이에어나 비슷한데 역시 제약이니까 캐미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총판허가를 취득치 못하게 되자 베이어캐미컬 회사를 독일에서 인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수십만불에 딜을 해와서 궁색하던 차에 고맙게 받으려고 했는데 변호사와 상의해보았더니 독일 바이엘약품은 국제규모로 대기업이므로 조금만 버티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제안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최소한 2천만불은 받을 수 있으니 자기에게 맡겨달라는지라 배짱이 있는 분이 되어 2년 정도 고전을 하면서도 견디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결국은 한 푼도 깍지 않고 2천만불을 받고 회사이름만 넘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그때부터는 하는 일마다 잘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사실 물상으로 은 독일이며 은 미국인데 이분의 사주에 용신이 庚辛金이었는지라 경신금이 좋아하는 亥水운에 당도하면 일확천금의 행운이 오게 되었던 것이며 가문궁에는 천을귀인이 자리잡고 있어 항상 어려울 때마다 천우신조의 구세주가 나타난다는 그런 운명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지나온 이야기는 본인이 더 잘 아는 것이고 미래운이 궁금할 것이므로 세밀히 검토하여 상담해드리고 앞으로 오는 丁丑대운에는 관청송사로 인해 감옥에 갈 일이 생길 것이라고 주의를 당부 했던바 실로 정축운이 당도하자 비자금과 탈세 문제로 구금될 입장이었는데 보석금을 내고 낮에는 사업 활동을 하고 잠잘 때는 감호소에서 지내며 5년을 꼬박 보내게 되었으니 대인이라 할지라도 불운이 당도하면 여지없이 액운을 면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후문에는 보석금을 수백만불 냈다고 들었다.

 

다음이야기는 골프 티칭 김선배님이다.

 

辛庚戊戊

巳寅午寅

 

이분은 충북 영동태생으로 대전(大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무역진흥공사로 진출했는데 당시 공무원신분으로 시카고 맥코믹에 무역업무차 파견되었다가 미국에서 미모의 유학생을 만나 결혼하게 되어 이민하게 된 분이다.

戊寅생으로 부인은 癸未생이며 一子 一女를 두고 다복하게 지내면서 골프 티칭이 되었는데 우리 두 아들에게 골프지도를 해주시며 알게 된 분이다.

 

비교적 결벽한 성품의 소유자로 남에게 조금이라도 해롭게 못하는 선비형인데 사주를 보면서 69세에 대장암이 올 것이라고 예단했던 것이 그 나이에 당도하여 정말로 직장암이 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전화로 문의하며 처신에 조심을 하던 분이었으므로 나와 이웃하며 요양하겠다고 마음먹고 사업체는 아들에게 맡기고 대야농장으로 와서 함께 사시다가 6년 만에 타계하셨다. 역시 八字에 타고난 병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었다고 본다.

 

꼭 죽을 병에 걸리는 분들을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병에 해로운 습성이 있기 마련이다. 중병의 가장 큰 원인은 첫째로 마음(성격)이며, 둘째로 음식습관이며, 셋째로 생활습관이며, 넷째로 인과법이다. 여기에는 배우자 및 함께 지내는 인연들이 포함되고 환경의 인연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것만 주의한다면 惡病을 피할 수 있는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피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1989년 패트리어트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민영기 박사를 만나다.

 

내가 시카고에서 소문이 나자 핵무기 위스칸신주 밀워키 시티에 있는 핵무기 개발연구소에 근무한다며 자기소개를 한 민영기박사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는데 당시 이분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발명한 유일한 한국계 박사로서 FBI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외부인사를 만날 수 없었고 반드시 FBI에서 지정한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관계로 시카고 링컨거리에 있는 신라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납치나 테러 등 신변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미 정부에서 신변을 철저히 보호했던 모양이다. 신라식당은 항상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는데 점심시간임에도 사람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그 시간대에 전세를 냈던 것으로 짐작이 가는 일이다.

 

대화내용이 모두 녹음되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나를 만나게 된 것은 자신의 미래에 관한 문제였다. 핵무기 개발과 패트리어트 미사일 개발로 인하여 박사학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고 하며 미국에서는 정부기관인 연구소에 학위를 기증하는 제도가 있었던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교와 핵무기 연구소에 학위를 기증하는 대신 평생을 미 정부에서 보장받기로 되었다고 했다. 과학자였기 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잘 아는가? 하고 시험하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심경을 말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제도에 대한 상식이 없으므로 대략 그렇게만 이해를 했다.

 

궁금했던 문제는 언제쯤 귀국해서 서울대 교수로 임용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가정사였다. 부인은 을미생으로 그다지 다정한 관계는 아니었다. 거의 연구실에서 지내므로 해피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키는 자그마한 분이 눈이 초롱초롱했고 인물은 나만큼이나 못생겼으나 피부가 해맑고 중량감이 배어나왔다. 서울대학에서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칸신대학으로 유학했는데 당시 밀워키소재 핵무기 개발업체에서 시민권과 평생 보장을 제의받고 연구소에 들어가 박사학위도 받고 출타할 때마다 권총 찬 보디가드 두 사람이 항상 수행을 했다고 하니 대단한 인물로 보였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숨이 막혔을 것이다. 친구를 만날 때도 친인척을 만날 때도 보디가드는 항상 붙어 다녔으니 말이다. 그래서 귀국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 정부에서 보내줄지 아니면 어느 정도까지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지 여러 가지로 궁금한 사연이 많았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그 분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 의문을 해결해줘야 하는 나의 책임이 있는지라 한마디로 당신이 귀국해도 서울대학에서 반겨주지 않을 것이니 교수의 꿈은 버려야 할 것이며 지금은 핵 연구소에서 당신을 금 쪽 같이 알겠지만 앞으로 3년만(1992) 지나면 핵무기 연구소에서 퇴임하게 되고 핵개발연구소가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고 통변했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민박사의 신변을 미 정부에서 보호할 정도라면 민박사의 개인 운으로 핵무기의 미래를 예측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과감한 통변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로 미국의 전략무기인 만큼 민박사 개인의 운으로 그러한 통변이 가능할 것인지는 깊이 숙고해야 하겠지만 하여간 미 정부의 신병보호를 받는 과학자라면 민박사의 운으로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소위 세계제일의 과학자가 이 말을 믿으려 했을까? 나 자신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주를 봐달라고 했으니 팔자에 나타난 대로 통변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던가. 이분의 팔자에는 寅木丙火태양에 빛을 반사하고 있었으므로 곧 미사일이며 핵무기가 되는데 丙戌생이었으므로 丙火는 곧 전쟁무기며 핵이 아니던가, 위에서 민박사가 말 한대로 그분의 말과 팔자가 하나도 틀리지 않고 팔자에 그림같이 보였던 것이다.

 

다시 丙火는 전기공학이며 서울대학도 되고 전략무기인 핵과 패트리어트 미사일도 된다. 그런데 3년 후가 壬申년이었다. 寅木발사대가 박살나고 丙火가 먹구름에 가리워지며 大運寅木葬地운이니 핵무기 發射臺마저 파괴되어 폐기처분이 되는지라 核武器가 사라진다고 단순하게 판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로 단순하다기 보다는 무모하리만치 예리하게 분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 통변이 됐다면 민박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였다. 물론 鑑命紙에 정자체로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주었다. 맞고 틀리는 것은 그 때가 당도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나 자신도 그렇게 감명하고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며 그때를 기다려 보기로 했던 것이니 나만이 황당한 일이었겠는가?

 

민박사는 고연히 헛수고만 했구나 하는 눈치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물론 상담료는 받았다. 그리고 나서 2년이 지나자 1991년도에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와서 냉전종식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때부터 나의 예견이 적중되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냉전종식을 선언하자 곧 핵무기 생산중단이 발표되므로 문을 닫기에 이르렀고 종내는 민박사도 자리를 떠나야 할 입장이 되었으니 곧 壬申년 초였다고 기억된다.

 

아무리 독하고 의지가 강한 박사라 할지라도 이지경이 되었는데 나를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는 내가 부산에서 진학상담으로 바쁠 때였는데 연락이 왔던 것이다. 꼭 도사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진학상담을 마치고 도미하여 기다리던 민박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여러 일화가 數多하지만 어찌 모두를 소개하겠는가? 전기공학을 했고 물리학에도 대단한 식견이 있는 분이었는데 운명철학이 이렇게도 신비로울 수 없다며 나와 숙식을 함께 하면서 자기 집에도 초대해주고 하여 여러 날을 여행도 하며 많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는데 물리학적 관점에서 理氣學을 분석해보면 일맥상통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박사와 명리학자와의 조우는 매우 유익한 시간들이었고 나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민박사 이야기로는 초음속을 마하라고 하는데 마하라는 과학자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하였다. 초음속비행기를 개발한 마하박사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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